소극모음 / 신명섭
백지장은 혼자(2020-08-29)
"뭐 좀 다른 거 할 때인가?"
"어렵지. 그나마 줄이려고 하는 마당에."
"하기엔 나이는 그렇다쳐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쉽지 않아."
"배우지도 않은 도둑질은 왜 해. 다른 일도 있는 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 새끼는 속담만 쓰면 꼭 지랄병이야.
그러는 너는 그 말장난 같은 니 시나 어떻게 해봐라."
"소극시인은 신분이야. 신분상승이 아닌 신분하강이야."
"우리 처남도 소극시라는 건 처음 들어본대."
"내가 죽으면 알려져요. 문학사조로, 또 안 알려지면 어쩔거야."
"그래 맘대로 해라."
"그나저나 니 재주도 써먹을 겸해서 뭐 같이 해볼 만한 거. 응? 네 좋은 잔머리로 말이야."
"난 우연히라도 만나면 늘 사업구상한다는 그형처럼 평생사업구상 중이야. 뭐가 좋을까아아."
"그러지 말고 명섭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잖아."
"어이 백지장 맞들면 찢어지기 십상이야. 아니, 아닌가 습자지 정도인가"
"요즘 유행하는 거리두면서 들면 찢어지지. 땡겨지니깐."
"자식아! 유행이라니."
"팬데믹이 유행병아니야. 근데 습자지 오랜만에 들어본다."
"술푼 자아지."
"축축해서 슬픈 게 아니고 술퍼."
"내가 진짜 슬픈 얘기 해 줄게. 이제 버선발로 뛰쳐나와 손님 맞는 것보다
마스크빨로 반가운 척 손님 맞아야 된다고."
"설마아 그럴까. 이러다가 스타킹발에 화장빨로 맞아주던 그 로맨스를 그리워하는 시절이 올까?"
"여흑씨 통찰력 떨어지는 님은요. 담배꽁초가 나뒹구는 시대에서 쓰고 버린 마스크가 나뒹구는 시대로 꼭 가세요.
부디ㅋㅋ."
"니나 가라. 하와이."
너도 아는 거 있구나
"명섭아, 그레잇 리셋의 속뜻이 있다고 했나? 아님 경제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미래 진단 정도?"
"그게 보다 처방, 가이드라인 그리고 그 이상의이이이이이."
"그 이상 뭐?"
"플랜이랄까. 그래서 일설에 플랜데믹이라고도 하지. 모르겠으면 너도 검색해봐."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어떻게 믿어."
"아니면 알 만한 사람한테 물어보든지."
"그러다 이 사람이다 싶어 눈 맞으면."
"훌륭한 자식이네. 쓰레기도 치워주고 말이야. 근데 사실 나도 자세히 몰라."
"그럼 처음부터 모른다고 그러지."
"너는 말이야. 알 만한 사람인지 모를 만한 사람인지를 몰라. 그래서 알 만한 것도 모르고 알아야 될 것도 몰라.
거기에 모르고 있다는 것도 몰라. 마치 연동이랄까. 그리고 내가 이걸 기획한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제발 그 소리 좀 그만해 이 팔럼아아."
"모라구?"
"아 맞어."
"뭐가?"
"앨런 긴즈버그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고 했지. 유튜브에."
"음."
"꼭 실물로 만나봐야 알아. 대화하고 밥 먹고 그래야 아냐구. 보통 책 보면 알잖아,
혹시나 아예 시집을 안 본 거 아니야?"
"너도 아는 거 있구나."
짠돌이
"이 벼룩에 간을 내어 먹다 식구끼리 나눠 먹고 남은 거 냉동고에 보관하다 3년 후 전자렌지에 돌려 먹을 인간아."
"그냥 욕을 해라. 걔만도 못한 놈이라고."
"그애?"
도어락해
"의심 많은 남자는 큰일을 못한다잖아."
"너는 남 의심 안 해도 소일이나 하지 뭐."
"안 하는 거 보다는, 근데 아주 소심해서 뭐든 도둑 맞을까봐 걱정하는 인간의 유서 끝줄에는,
내 관뚜껑 안쪽에 자물쇠 달아줘."
"도어락 쓸라고 해."
이를테면
"너는 이를테면. 놓친 버스에 손은 안 들어. 택시 잡고 정류장 먼저 가서 놓친 버스 다시 탄다 말이야."
"그래서?"
"쭉 목적지에 직접 가면 택시비가 아깝거든."
"미국 갈때 공항까지 택시타면 여기서 얼마냐!"
"예컨대, 몰라?"
만취
"담배 하나 안 내놔. 詩八놈아."
"오빠한테 詩발놈이 뭐야."
"내가 언제 詩발놈이라 그랬어. 詩8놈이라고 그랬지."
"작작 좀 해라."
"그럼 뭐라 그래?"
"詩8Bird끼."
청소 좀 하고 살아
"너 존 잘, 존 예 어떻게 구별하는지 알아?"
"뭐 특별한 거 있어?"
"이렇게 해봐. 하얀색 발목양말을 새로 사서 신겨, 그리고 1년 동안 청소 안 한 방바닥을
10바퀴씩 돌게 한 후에 발바닥을 봤을 때, 그래도 귀엽게 보이면 존잘. 사랑스러우면 존예."
"뭔 말인 줄은 알겠는데, 누구한테 시켜."
"그게 문제야."
"방바닥은 니 방 쓰면 되겠다."
너 마음이 아프니
"전화위복이 뭔 말인지 알지."
"나쁜 게 좋게 되돌아 온다는 거지. 그러니까 지금 안 좋은 게 꼭 나쁜 것만 아니다."
"그거 보다 전화 왔다. 위복아! 어딨어?. 또 있잖아. 진수성찬, 진수야! 성찬 좀 차려라."
"명섭아, 너 마음이 아프니."
게으름
"야, 너는 이빨 3분이나 닦냐? 나는 적어도 5분은 닦는다. 씹새야."
"그렇지. 3일에 한번 이 시벨놈아."
등교
"야! 지금 저녁이야. 쟤 낮잠 자고 정신 없네."
"너 아침인 줄 알았지. 쟤 업어 가도 모르게 자더라고. 피곤했냐?."
빙고
"너 성격이 가장 좋은 남자가 누군 줄 알아?"
"또 헛소리하려고 그러지 너."
"들어 봐. 남편이 미워서 일부러 짜게 김밥을 만들어 준 마눌을 앞에 두고,
짠 김밥을 반찬 삼아 맹밥 위에 올려 먹는 남자. 간이 맞잖아."
"약 올리는 거 같은 데. 명섭아. 말 좀 적당히 지어내라. 내가 문외한이지만 너는 만든 시야.
그린 서예, 그려. 그만 둬. 돈 벌어. 마른 우물에 취미도 아니고 운동 삼아 파냐.
손가락은 딸딸이 칠 때나 써. 딸딸딸. 너 지금도 타자가 느리던데 바쁜 문서 못 만드니깐 시 만드는 거 아니야?"
"빙고."
나끼오빠?
"괴로울 때 피는 담배연기엔 한숨이 섞이게 되잖아요. 이 연기가 하늘로 올라
나끼오빠에게 닿을 수 있다면 제 고민도 알아주시지 않을까요. 물론 해결해 주실
지는 모르겠지만요."
"기도하세요. 아니면 하나님이 기침 나오게 했다고 폐암이나 내려주실 톄니깐요. 근데 나끼오빠가 누구예요?"
새
일찍 일어난 새야
편의점 컵라국 삼각이와
'안녕바다'가 부른 "별빛이 내린다"로
별도 보일 먼동틀 녘에 일어난
속을 달래보자꾸나
높이 오를 새야
옥탑에서 한 까치 물고
'이승열'이 부른 "날아"를
해 뜰 녘에 브금 해보며
하루를 올려보자꾸나
새들아
너무 서두르면 깜빡하게 되고
너무 기어오르면 솔개를 조심해
아! 솔개도 새구나, 담배는 비추다
그리고 난 씹새니 새겨듣지 않아도
양극화
"너 배부른 돼지가 될래.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
"배부른 소크라테스께서 등가죽이 배에 붙은 저희 삼겹살을 더 드시려 하시는군요.
그럼 질겨도 씹는 돈맛이니 꼭꼭 많이 처 드세요."
공상
뻣뻣해진 바지주머니 속
네 손가락 마디는 "한 잔해야지."에
다물었던 네 입보다 따뜻했겠지
지나가는 버스 LED 안내판도 비에 젖어
술꾼 조차 반기지 못할 것처럼 보였겠다
스쳐가는 사내직원이 있다면
눈을 내리 깔아 네 입조차 못 열게 했고
내리 뱉은 담배연기는 노점 떡볶이 김보다
높이 뜨지 못 했을 거다
지난 주말 찾아와 한탄에 앞날을 토해내던
사내친구 눈동자는 바람에 흔들리던
머리카락보다 더 요동쳤고
비꼰 눈빛은 보도블록 간 경계선처럼
이때 즈음 네 마음에 금을 그어놓았을 거며
바람은 어깨 뒤로 한숨을 넘겨 놓았겠지
눈은 아스팔트 바닥에 비친 신호등
시름에 젖은 와이프와 유튜브 보다 잠든 애와
이마트에서 사다 놓은 냉장고 안 캔맥주와
카톡 재미를 주는 뒷마당 평상이 널 기다릴
그 시간엔 타이어에 흙탕물 뿐이었겠지
그들이 6 개월 후인가
얼마 남지 않은 건 너도 알고 있겠지
비 개어 마른 길 구석에 누운 지렁이 옆으로
섞은 쏘맥 쏴서 그린 네 오줌자국이 남은
골목 모퉁이 옆을 걸어보는 것도 말이다
오늘 아침처럼 같은 얼굴들을 돌려
출근 시킬 건물 출입게이트 앞 회전문처럼
머리 속도 빙빙 돌아 잠이 오지 않을 넌
내일 아침 무렵 먹다 남은 맥주캔 안에서
젖어버릴 담배꽁초와 다를 바 없겠지
그래, 쏘맥을 좋아하던 널
이제는 공상으로 알 수는 없겠지
대강 전해 들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게 전부구나
애들도 아니고 이런 유치빤스를
애들아, 미안해
연기가 되어 가지요
"먼지가 되어"
이 곡이 내 장례식에서
흘러나오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신원불명자, 미발견
흙 되어서
흙먼지 되어
갈 곳에 갈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 귀찮다
그냥 화장해 주세요
연기가 되어 가지요
먼지가 이 먼지가 아니고
연기가 연기이기를 바라니
내 장례에 내가 안 가지요